조광제(철학, 미술비평)

1.
OFF. 전면(全面)의 넓은 백색종이 위에 오로지 정적이다. 형상과 질서에 의거한 배치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은 곳, 심지어 우주제작자 데미우르고스(Demiourgos)의 손길마저 전혀 미치지 않은 곳. 아득한 시간 이전의 근원의 장소. 만물의 잉태를 머금은 장소. 시공간적인 카오스(chaos)의 장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잠정적인 의미와 무의미를 실어 나를 소통의 회로들이 은폐되어 잠정적으로 마련되어 있는 장소.

ON. 배면(背面)의 조명으로 밝음과 어둠이 처음으로 나뉜다. 어둠에 따라 밝음의 짧은 길들이 열린다. 밝음에 접하여 잘라낸 어둠의 자잘한 길목들이 막아선다. 밝은 길들과 어두운 길목들, 부딪침으로써 열리고 열림으로써 닫히고 닫힘으로써 부딪는다. 숱한 회로들의 시공간이다. 형상들이 회로의 시공간을 통해, 즉 우주의 자궁인 코라(chora)를 통해, 이제 막 머리를 내밀며 태어나고 있다. 아직은 코스모스(cosmos)가 아니다.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전환되는 과정인 카오스모스(chaosmos)다.

2.
인간에게 형상들은 소통을 통해 의미로 실현된다. 의미는 회로를 통해 표현되고 전달된다. 의미에는 반(反)의미도 포함된다. 소통이 자유로운 표현의 장을 깊게 확장시켜 열어나가면 의미의 방향으로 이루어지지만, 자유로운 표현의 장을 엷게 축소시키면 소통은 반의미의 방향으로 치닫는다. 인간의 존재는 소통의 방식을 통해 결정된다.
현대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공간은 무한겹겹의 인터넷, 그 전자적인 빛의 장소다. 작가 김영식이 ON의 시공간에서 배면에 켜놓은 은폐된 조명은 인터넷의 전자적인 빛의 보편성을 은유한다. 조명을 받아 현란하게 드러나는 밝음과 어둠의 복잡 미묘한 길과 길목의 형상들은 인터넷 소통의 무한다양한 회로들을 은유한다.
그리고 급기야 전반적인 카오스모스적인 형상은 화폐다. 이를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인터넷에 의거한 사물인터넷과 빅 데이터 등이 현대의 소통의 네트워크를 보편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 김영식은 그 모든 네트워크가 온통 화폐로 점철되어 있음을 넘어서서, 알고 보면 그 네트워크 자체가 화폐임을 웅변하고 있다. 화폐가 지고의 권력으로 작동하면서 반의미가 의미를 지배하게 된 오늘날의 삶의 상황이 알게 모르게 전반적으로 이미 비틀어지고 찌그러져 있어 무한히 많은 길에도 불구하고 아무 길이 없이 막혀 있음을 주장한다. 그런 까닭에 그가 표현하고 있는 ON의 시공간은 그 자체로 절망의 묵시록이다.
이에 OFF의 시공간은 현대의 왜곡된 소통 상황을 전면적으로 삭제하고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전복의 혁명적인 행위, 즉 작가 김영식이 추구하는 저 전대미문의 OUTOPIA를 위한 혁명적인 행위를 요청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절망의 묵시록에서 암시되는바, 그가 TOPOS=장소를 OUT=벗어나려는 것은 U=없는 TOPOS=장소를 향한, 무위(無爲)의 처절한 예술적인 몸짓이다.
그 와중에 지독한 역설이 작동한다. 지금 여기의 장소가 바로 없는 장소=UTOPOS이자 지금 여기를 벗어난 장소=OUTOPOS라는 사실이다. 작가 김영식은, 오늘날 모든 인간들이 이미 지금 여기의 장소=TOPOS를 벗어나 있으면서 지금 여기를 벗어난 장소=OUTOPOS를 향해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음을, 그 역설을 보임으로써 예술의 경지, OUTOPIA를 열고 있는 것이다.

3.
작가 김영식은 본래 조소과 출신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종이를 깎아낸다. 치밀하게, 더없이 끈덕지게, 마치 시간을 잘게 쪼개어 그 미세한 한 올 한 올의 결을 파고들 듯이, 종이 위에 골을 파고 또 파들어 간다. 그럼으로써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한 휘황찬란한 전대미문의 회화를 만들어낸다.
회화는 일반적으로 종이나 캔버스에 물감을 덧붙여나가는 작업이다. 그와 달리, 작가 김영식의 회화는 종이를 덜어나가는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회화는 조각적 회화라 할 것이다. 애초 조각은 입체의 돌을 쪼아 그 속에 숨겨져 있는 형상을 양(陽)=의 방식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그와 달리, 김영식의 조각은 평면의 종이를 쪼아 그 속에 숨겨진 형상을 음(陰)=의 방식으로 추상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조각은 회화적 조각이라 할 것이다. 결국 그의 작품은 탈(脫)장르의 예술적 의식에 의거한 조각적 회화요 동시에 회화적 조각이다.
회화건 조각이건 작품이 관람자에게 드러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밝음 속에서 전면에서 비추는 더 밝은 빛을 필요로 한다. 그와 달리, 작가 김영식의 회화적 조각=조각적 회화는 전체적인 어둠 속에서 배면에서의 은은한 빛을 필요로 한다.

4.
예술에서 형식과 내용의 일치는 여전히 요청되는 사안이다. 작가 김영식은 자신의 전시회에 “OUTOPIA”라는 기묘한 제목을 안출해 붙이고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보면, 그가 마련하고 있는 전시공간의 전체적인 어둠은 지금 여기의 현실세계이자 그 현실세계의 환상성을 드러내는 OUTOPOS, 즉 부재의 현존을 암시하지 않겠는가. 또 그가 평면의 종이에 더없이 치밀하게 현란한 회로들을 음각으로 파내어 배면에서부터 빛나게 한 것 역시 오늘날의 현실세계가 부재를 통한 현존일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지 않겠는가.
관람자로서 우리는 그가 마련해주는 이 묵시록적인 비의(秘儀)의 장소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이미 현대적으로 분식(粉飾)된 우리의 위태로운 존재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숨죽이며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